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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생각들/일상의 생각들

어떤 수행자의 고뇌와 번뇌와 미망, 그리고 참된 용서를 묻는 기도

by 내면치유 2025.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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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수행자의 고뇌와 번뇌와 미망, 그리고 참된 용서를 묻는 기도

수행자의 길을 걷다 보면 언젠가 한 번은 “정말 이것이 신의 뜻인가?”, “용서와 진실은 누구의 몫인가?”라는 질문과 마주하게 됩니다.

이 글은 사찰에서 잠시 스쳐 간 한 수행자의 분노와 고뇌, 그리고 그가 신 앞에 던진 날 선 질문들을 정리한 기도문이자 철학적 명상 에세이입니다.

수행자의 고뇌, 번뇌와 미망, 위정자에 대한 분노, 참된 용서와 진실을 향한 간절한 바람이 담겨 있습니다.

목차

1. 사찰에서 만난 수행자 – 분노 섞인 기도의 출발점

사찰을 방문했을 때 잠시 인연이 닿았던 한 수행자가 있습니다. 그 수행자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가 정리해 둔 글에 대해서도 잠깐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는 공부를 위해 그곳에 머물고 있었고, 여러 화두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수행 중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각자가 품고 있는 화두에 대해, 또 그 화두를 따라가며 부딪히게 되는 여러 감정과 생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말이 길지 않았음에도, 서로의 눈빛과 고개 끄덕임 속에서 “아, 같은 지점을 보고 있구나” 하는 암묵적인 동의가 있었습니다.

그 짧은 만남은, 수행자의 길 위에서 서로를 스쳐 지나가는 작은 인연이었지만 지금도 마음 한켠에 또렷하게 남아 있습니다.

이 글은, 그 수행자가 화가 난 듯 불만을 거침없이 쏟아내며 날려 적어 내려간 글귀들을 제가 조용히 정리해 본 내용입니다.

2. 신의 뜻을 거부하는 수행자의 질문

기도는 찬양이 아니라, 질문과 거부에서 시작됩니다. 수행자는 고통과 반목으로 가득한 세상을 보며 “이것이 정말 신의 뜻이라면, 나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선언합니다.

신이시여,
우리는 왜 이렇게만 살아야 하는 것입니까?
도대체 인간이란 존재는 왜 이토록 힘들어하면서 싸우고,
서로를 미워하고, 반목하며 살아가야 합니까?
만약 이것이 신들의 뜻이라면,
저는 그 뜻을 단호히 거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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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요동치는 마음과 번뇌, 그리고 미망

수행자의 내면에는 끝없이 되살아나는 번뇌와 감정의 파도가 있습니다. 그는 이 끝없는 감정의 파도가 정말 신의 뜻인지, 아니면 인간 존재의 조건인지를 따져 묻습니다.

신이시여,
사람들의 마음은 왜 이리도 요동치는 것입니까?
아픔과 고통, 괴로움과 깊은 슬픔이
한순간에 사라졌다가도 다시 일어나
끝없는 파도처럼 우리를 집어삼키는 것은
도대체 무엇 때문입니까?
만약 이 끝없는 파도가 신의 뜻이라면,
저는 그 뜻을 더 이상 신의 이름으로 받아들이지 않겠습니다.

세상의 모든 중심이 결국 자신이라 하셨지만,
수행자로 살아가는 저는 아직 그 깊은 뜻을 다 알지 못하였습니다.

신이시여,
이렇게 미숙하고 어리석은 저이기에,
그 참된 뜻을 조금이라도 알 수 있는 길을 일러 주옵소서.
그렇지 않다면,
저는 신의 뜻을 거부하겠습니다.

4. 세상의 흐름과 인간의 자리

자연의 흐름은 고요하고 단순해 보입니다. 그러나 수행자는 “세상이 원래 그런 것”이라는 말만으로 인간의 고통과 부조리가 설명되기를 거부합니다.

하늘에는 구름이 있고,
구름이 있으니 바람이 불고,
바람이 부니 나무가 흔들리고,
그 흔들림 사이로 세상에 종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그러나 신이시여,
이 모든 것이 그저 세상의 흐름이라 말씀하신다면,
저는 그 말을 아무렇지 않게 넘기지 않겠습니다.
그 흐름 속에서 이유도 모른 채 휩쓸려 가는 존재로만

남으라 하신다면,
저는 그런 신의 뜻에 고개를 숙이지 않겠습니다.

바람이 소용돌이 치고,
나뭇잎이 그 소용돌이 속에서 요동치며 위로 올라가는 모습은
마치 화염이 치솟아 오르는 것과도 같습니다.

신이시여,
우리는 항상 착각 속에 살아가고 있음을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에게 그 착각은,
때로는 희망과 사랑을 찾을 수 있는
마지막 통로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 그마저 허락하지 않으신다면,
저는 다시 한 번 신의 뜻을 거부하겠습니다.

5. 부와 권력, 그리고 위정자에 대한 분노

기도는 점점 개인의 번뇌를 넘어 부와 권력, 위정자와 구조적 불의에 대한 분노로 확장됩니다. 수행자는 위선과 위정자의 탈을 향해 날선 질문을 던집니다.

부와 권력을 가진 자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그들의 잘못은 드러나지 않은 채,
선한 사람들만 고통받는 세상이
신의 뜻이라 하신다면,
저는 그런 뜻을 신의 뜻이라 부르지 않겠습니다.

신이시여,
어설픈 탈을 뒤집어쓴 채
자비로운 얼굴을 흉내 내는 위정자들이,
그 탈 속에는 악마 같은 마음을 숨긴 채
당신 앞에 기도하고 있다면,
그리고 당신께서 그들을 아무렇지 않게 용서하신다면,
저는 그런 신을 부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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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참된 용서의 주인은 누구인가 – 철학적 질문

여기서 기도는 “용서”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물음으로 들어갑니다. 수행자는 참된 용서의 주인이 누구인지, 신의 용서와 피해자의 고통 사이에 어떤 간극이 있는지를 묻습니다.

신이시여,
잘못에 대한 참된 용서
결국 그 잘못으로 직접 상처를 입은 이의 영역에 속합니다.
타인의 고통과 상처가 머물러 있는 그 자리에서,
피해를 입은 당사자가 스스로의 시간과 깨달음 속에서
“이제는 놓아 줄 수 있다”고 말할 때,
그때 비로소 용서라는 말이 조심스럽게 입에 담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거짓이 섞인 회개의 말이
진실한 참회인 양 포장되어 당신께 올려지고,
그 기도가 허위임을 당신께서 이미 알고 계심에도,
상처 입은 이들의 고통과 책임의 문제는 제쳐 둔 채
그들을 가볍게 용서하신다면,
저는 그런 신을 믿지 않겠습니다.

죄를 짓고도 아무 벌도 받지 않는 세상을
당신의 너른 용서라 부른다면,
저는 그런 신의 뜻을 끝내 거부하겠습니다.

7. 모든 거짓이 드러나기를 바라는 마지막 기도

마지막으로 이 글은 모든 거짓이 드러나고, 진실이 밝혀지기를 바라는 기도로 끝을 맺습니다. 거부와 부정의 언어 속에서도, 결국 수행자는 진실과 빛을 향한 마음을 놓지 않습니다.

그러니 신이시여,
거부 속에서라도 진실에 다가가고자 하는 이 한 마음만은
외면하지 말아 주옵소서.

이 미망과 번뇌의 소용돌이 속에서,
단 한 줄기라도 진실을 비추는 빛을 허락해 주옵소서.

세상에 숨은 모든 거짓이
더 이상 감추이지 못하게 하시고,

세상 모든 이가 그 실상을 똑똑히 알 수 있게 하시어,
마침내 모든 진실이 온전히 드러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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