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의 회복 탄력성 · 역경을 통한 내면의 성장
끝을 기다리던 마음을 내려놓다
견딤의 무게와 마음의 빈자리
이 글은 참고 견딘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바라보는 기록입니다. 견딤은 마음을 억누르는 일이 아니라, 무너지는 마음을 외면하지 않고 바라보는 일입니다. 고통의 끝을 기다리던 마음을 내려놓을 때, 삶은 조금씩 가벼워집니다.
목차
개인적 수행에서 시작된 기록
이 글은 개인적 수행의 경험에서 비롯된 기록입니다. 따라서 모든 사람에게 일반화될 수 없음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저는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 답을 찾기 위해 오랫동안 마음의 길 위를 헤매었고, 바깥에서 밀려오는 말과 시선,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들이 제 안에 일으키는 반응을 참고 견뎌야 했습니다.
참고 견딘다는 것의 무게
견딘다는 말은 겉으로 보기에는 단단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한 마음의 무게가 남아 있었습니다.
무너지고 싶어도 무너질 수 없었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었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삼켜야 했던 마음이 있었습니다.
속으로는 무너지고 있었지만, 겉으로는 아무 일 없는 사람처럼 하루를 견뎠습니다. 그렇게 하루를 견디고, 다시 다음 하루 앞에 섰습니다.
참고 견디어 낸다는 말 속에는 누구도 다 알아주지 못한 시간이 있었고, 누구에게도 온전히 기대지 못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참고 견디어 낸다는 말은 제게 오래도록 무겁게 남았습니다. 그 말 속에는 누구도 다 알아주지 못한 시간이 있었고, 누구에게도 온전히 기대지 못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마다 말하지 못한 마음의 무게를 견디는 자리가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아 보여도, 마음속 깊은 곳에는 끝내 꺼내지 못한 빈자리가 남아 있었습니다.
마음이 이해받지 못할 때
곁에 사람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곁에 사람이 있다는 것과, 마음이 이해받는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습니다.
가까운 사람이 있다고 해서 마음의 빈자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가까운 사람이기에 더 깊은 공허함을 느낄 때가 있었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제 마음의 일부는 헤아려 주리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이 닿지 않을 때, 마음은 더 깊은 곳으로 가라앉았습니다.
곁에 누군가가 있어도, 마음속에서는 아무도 없는 방에 혼자 앉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곁에 사람이 있다는 것과 마음이 이해받는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습니다. 이 차이를 알게 되었을 때, 저는 제 안의 외로움을 더 깊이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고통 안에 숨어 있던 기대
처음에는 그 사실이 마음 한쪽에 무겁게 남았습니다. 왜 제 마음은 닿지 않는지, 왜 제 안의 무게는 끝내 이해받지 못하는지 수없이 물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되었습니다. 그 물음 안에도 기대가 있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누군가 저를 알아주기를 바랐습니다. 제 고통을 이해받고 싶었습니다. 홀로 견뎌온 시간을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그 마음은 너무도 인간적인 마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마음을 붙잡고 있을수록, 저는 더 깊이 외로워졌습니다.
이해받고 싶은 마음이 클수록, 이해받지 못했다는 상처도 커졌습니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클수록,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는 서운함도 깊어졌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고통은 바깥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바깥의 일을 붙잡고 있는 마음에서도 다시 일어난다는 것을 말입니다.
끝을 기다리던 마음
수행이란 아무렇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마음의 흔들림이 일어나는 자리까지 외면하지 않고 바라보는 일이었습니다.
《법구경》에는 “자기야말로 자기 자신의 의지처”라는 가르침이 전해집니다. 이 말은 제게 차갑게 홀로 서라는 말로 들리지 않았습니다.
누구도 제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기에, 결국 자기 마음의 자리로 돌아와야 한다는 가르침으로 다가왔습니다.
아무리 누군가가 곁에 있어도, 제 마음의 고통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었습니다. 아무리 누군가가 저를 위로해도, 제 안에서 일어나는 집착과 기대를 대신 내려놓아 줄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저는 제 마음을 다시 바라보아야 했습니다. 외로움이 일어나는 자리,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는 자리, 끝을 기다리는 마음이 생겨나는 자리를 조용히 들여다보아야 했습니다.
저는 오래도록 끝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 고통이 끝나면 괜찮아질 것이고, 이 문제만 지나가면 비로소 마음이 놓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의 끝에 닿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끝은 사라졌습니다. 끝났다고 믿었던 자리에서 또 다른 문제가 생겨났고, 겨우 넘었다고 생각한 곳에서 다시 새로운 마음의 짐이 생겨났습니다.
끝이라고 믿었던 것은 끝이 아니었습니다. 해결이라고 여겼던 것은 또 다른 시작이었습니다.
저는 끝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끝이라는 생각에 쫓기고 있었습니다.
이 고통이 끝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외로움이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마음의 빈자리가 채워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기다림 자체가 또 하나의 붙잡음이었습니다.
법구경과 금강경이 비춘 마음
《법구경》 338게송에서는 나무를 베어도 뿌리가 온전히 남아 있으면 다시 자라듯, 갈애의 뿌리가 뽑히지 않으면 괴로움이 거듭 일어난다는 취지의 가르침을 전합니다.
이 말은 제 마음 깊은 곳을 조용히 비추었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문제가 끝났다고 해서, 괴로움의 뿌리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상황이 지나갔다고 해서, 그 상황을 붙잡고 있던 마음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해받고 싶은 마음.
인정받고 싶은 마음.
더 이상 무겁게 흔들리고 싶지 않다는 마음.
끝에 도달해 쉬고 싶다는 마음.
그 마음들이 남아 있는 한, 괴로움은 모습을 바꾸어 다시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버려야 할 것은 단지 바깥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지나간 시간을 억지로 지우는 것도 답이 아니었습니다.
그 시간을 붙잡고 있던 제 마음을 바라보는 일이 더 중요했습니다.
《금강경》의 “응무소주 이생기심”, 곧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는 말은 제게 이렇게 다가왔습니다.
고통의 끝을 기다리는 마음도, 마음의 빈자리가 사라지기를 기다리는 마음도, 결국 하나의 머무름이 될 수 있다는 뜻으로 말입니다.
마음의 회복 탄력성
저는 그동안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에도 집착이 숨어 있었습니다.
편안해지고 싶다는 마음이 나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해받고 싶은 마음이 잘못된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그 마음을 붙잡고,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다시 무너지는 제 마음의 습관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 저는 견딤을 다르게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버티는 것이 아무 말 없이 참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음을 눌러야 강한 사람이라고 여겼고, 흔들리지 않아야 잘 견디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다르게 느낍니다.
회복은 무너지지 않는 힘이 아니라, 무너진 뒤 다시 돌아오는 힘입니다.
마음의 회복 탄력성은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힘이 아닙니다. 무너지는 마음을 밀어내지 않고 바라볼 때, 사람은 조금씩 자기 자리로 돌아옵니다.
견딤은 마음을 억누르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무너지는 마음을 모른 척하는 일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마음이 무너지는 순간을 알아차리는 일. 그 마음이 어디에서 일어났는지 조용히 살펴보는 일. 그 마음을 붙잡지도, 밀어내지도 않고 바라보는 일.
그것도 견딤이었습니다.
예전의 인내는 마음을 억누르는 일이었고, 지금의 인내는 마음을 바라보는 일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지나온 뒤, 마음은 예전보다 많이 편해졌습니다. 참고 견디는 마음에도 욕심이 있고, 이해받고자 하는 마음에도 욕심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누구도 저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은 처음에는 깊은 공허함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저는 그 공허함조차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공허함이 사라져서 편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외로움이 완전히 없어져서 괜찮아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그 마음들이 일어날 때, 그것을 곧바로 제 전부로 여기지 않게 되었습니다.
외로움이 일어나면, 외로움이 일어났음을 보았습니다. 이해받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면, 그런 마음이 일어났음을 보았습니다. 서운함이 일어나면, 서운함이 지나가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렇게 바라보는 동안, 저는 마음에 끌려가기보다 마음을 지켜보는 법을 조금씩 배워갔습니다.
내려놓음이란 무엇인가
마음은 붙잡아야 할 고정된 실체가 아니었습니다. 일어나고, 머물고, 변하고, 사라지는 흐름이었습니다.
내려놓는다는 것은 마음을 억지로 없애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마음이 일어나면, 그 마음이 일어났음을 아는 것이었습니다. 그 마음이 변하면, 변하고 있음을 아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감정으로 바뀌면, 바뀌고 있음을 아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라지면, 사라지고 있음을 아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일어나는 마음을 붙잡지도 밀어내지도 않고 바라보는 것. 그것이 제가 이해한 내려놓음이었습니다.
견딤의 끝은 마음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마음을 바라볼 수 있게 되는 자리였습니다.
끝까지 견디어 낸 것은 강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무너지는 마음을 안고도 다시 하루를 살아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끝을 기다리던 마음을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그래야 더 이상 끝을 향해 쫓기듯 달려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지금 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삶을 끝나야 할 고통으로만 보지 않고, 지금 이 순간 마주해야 할 흐름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참고 견딘다는 것은 더 이상 이를 악물고 버티는 것만을 뜻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마음을 외면하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무너지는 마음까지도 삶의 일부로 바라보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을 바라볼 수 있을 때, 견딤은 조금씩 무게를 내려놓기 시작했습니다.
끝을 기다리던 마음을 내려놓았을 때,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삶은 어떤 끝에 도달해야만 편안해지는 것이 아니라,
끝을 기다리는 마음을 알아차릴 때 조금씩 가벼워진다는 것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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