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백안 낭자와 뱀의 혀를 가진 악신

이 글은 영적체험과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창작 판타지이며,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은 허구임을 알려드립니다.
“물은 기억한다. 오래된 죽음도, 말해지지 못한 울음도.”
민우는 해가 지기 전, 오래전에 수몰된 마을에 도착했다. 지도에서도 사라진 그 마을은 댐이 들어선 뒤 대부분 물에 잠겼고, 지금은 무너진 제방과 반쯤 가라앉은 집터 몇 채만이 을씨년스레 남아 있었다.
그는 첫 발을 내딛는 순간, 땅이 아닌 기억 위를 걷는 듯한 감각에 휩싸였다. 차가운 기운이 온몸을 감쌌고, 물결이 아닌 오래된 통증이 발밑에서 밀려왔다.
“여기서 누가 죽었지… 아니, 내가… 이곳에 있었던가?”
그 순간, 등 뒤에서 낮고 젖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은… 그때도 이곳에 있었어요.”
돌아선 민우의 눈에 들어온 것은 흰 무녀복을 입은 여인이었다.
그녀는 자신을 무녀 해연이라 소개하며, 이 마을에 얽힌 비극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수많은 이들이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그때… 악귀의 기운을 느꼈죠. 산신께 여쭈었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그 한은 윤회의 업에 따라 곧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산신께서 어떤 남자의 환영을 보여주셨습니다. 그게… 바로 당신입니다.”
해연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고 민우를 옛 마을의 연못으로 이끌었다. 지금은 검붉은 물에 잠긴 그곳은, 한때 처녀들을 제물로 바치던 제단이 있었다고 했다.
“가뭄을 피하려고, 이 마을은 어린 처녀들을 뱀의 혀를 가진 악신에게 바쳤어요. 마지막 제물로 선택된 아이는 끝내 제단에 오르기를 거부했죠. 그 아이는… 자신의 두 눈을 찔러 물속에 몸을 던졌어요.”
그녀의 이름은 백안낭자.
사랑받지 못한 울음, 희생의 공포, 눈을 잃은 얼굴.
그 모든 고통이 응어리가 되어, 그녀는 악귀가 되었다.
해연이 조용히 물었다.
“당신은 지금 이 아이들의 절규가 들리지 않습니까?”
그 순간, 연못 위에 환영이 피처럼 번지며 제단이 되살아났다. 붉게 물든 물 위로, 눈동자 없는 소복 차림의 백안낭자가 칼을 들고 나타났다.
그녀는 소리 없이 민우에게 다가왔고, 칼끝이 그의 심장에 닿는 찰나
민우는 무릎을 꿇었다.
“미안하다… 전생에 나의 아버지가 저지른 죄. 그리고 내가 외면했던 너의 절규를, 이제야 듣는다. 어찌 쉽게 용서를 구할 수 있겠는가…”
그는 마치 피를 토하듯 절절하게 속죄했다.
“너의 원을 풀 수 있다면… 이 목숨, 기꺼이 바치겠다.”
그 말이 닿자, 백안낭자의 손끝에서 붉은 악념이 폭발하듯 피어올랐다. 연못 전체가 피비린내로 물들며, 그녀의 분노가 민우를 뒤덮었다.
그때 하늘에서 찬란한 빛이 쏟아지며 천우의 검에 비추었고, 그 빛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빛은 어둠을 감싸며 정화하기 시작했고, 민우의 귀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를 해원시키는 것이, 너의 참된 참회요, 용서이니라.”
민우는 손을 모아 수인을 맺고, 간절한 마음으로 광명진언을 외웠다.

“옴 아모가 바이로차나 마하무드라 마니 파드마 즈바라 프라바르타야 훔…”
진언의 울림이 빛과 어우러져 연못을 뒤흔들었고, 강한 파동이 백안낭자를 감쌌다. 고통 속에서 그녀는 몸을 떨었고, 그 어둠은 서서히 정화되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녀는 어린 시절의 순수한 모습으로 돌아가 웃음을 지었다. 빛으로 흩어진 그녀는 수천 개의 물방울이 되어 하늘로 사라졌다.
고요가 찾아왔다. 해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아이는… 정말 떠난 걸까요?”
민우는 연못을 바라보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아이는… 이제 모든 걸 내려놓고, 본래의 자아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연못 아래서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낮고 갈라진 목소리와 함께, 물속에서 괴이한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의 형상이지만 온몸은 뱀의 비늘로 덮여 있었고, 입가에선 두 갈래의 혀가 쉴 새 없이 흔들렸다.
눈동자 없는 눈, 전신에서 피어나는 검은 연기.
그는 원래 사람이었으나, 신이 되고자 한 자였다. 짐승과 사람을 가리지 않고 잡아먹다 죽음을 맞이했고, 그 한이 악신으로 부활하게 만든 것이다.
그는 이름을 말했다.
“악신.”
그리고 말은 이어졌다.
“예전에도 나를 없애고자 많은 자들이 왔지만, 결국 모두 나의 먹잇감이 되었지.”
민우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너 따위가 인간의 어리석음을 빌미로 얼마나 많은 이들을 죽였느냐!”
악신은 비웃듯 말했다.
“나는 단 한 번도 강요한 적 없다. 그들이 원해서 제물을 바친 것. 무지는 인간의 본성이지. 내가 아닌, 너희가 만든 재앙이다.”
그 순간, 민우의 발밑에서 검은 그림자가 뻗어 나왔다. 촉수처럼 그의 다리를 감싸며 마비시키고, 악신의 혀가 민우의 심장을 향해 치솟았다.
하지만 그 찰나, 민우의 가슴에서 눈부신 빛이 터졌다. 천우의 검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민우는 수인을 맺고, 부동명왕의 진언을 외쳤다.

“나마흐 삼만다 바즈라난 짠다 마하로샤나 스포타야 훔 트라탁 함맘”
산사때 처럼 진언과 검이 하나 되어, 찬란한 광명이 번개처럼 뿜어져 나왔다. 악신은 고통에 비명을 질렀고, 연못은 거대한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그의 몸에서 수십 마리의 뱀이 튀어나와 민우에게 달려들었으나 민우는 천우의 검을 내질렀다.
검에서 쏟아진 푸른 번개가 하늘을 가르며 악신의 심장을 꿰뚫었다. 비늘이 벗겨지고, 검은 연기처럼 그의 육신은 불타올랐다.
“아아아아아악!!!”
악신의 절규가 연못과 산을 뒤흔들었고, 그는 마지막으로 중얼거렸다.
“나는… 다시 태어날 것이다… 인간의 욕망이 존재하는 한…”
그리고 그의 육신은 산산조각 나 수면 위로 흩어졌고, 연기는 하늘로 흡수되어 사라졌다.
잠잠해진 연못. 붉게 물들었던 물은 맑은 청록빛으로 돌아갔다.
민우는 무릎을 꿇고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손에 다시 천우의 검이 돌아왔고, 하늘에선 한 줄기 새하얀 빛이 그를 감쌌다.
그때, 해연이 조용히 다가와 물었다.
“그 존재가… 이 모든 화의 근원인 악신입니까?”
민우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그러나 그것은 끝이 아니라… 전생의 저와 똑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다시 나타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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