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과 함께 앉는 법

“고통을 몰아내려 하지 말고, 고통과 함께 앉으라.”
어느 순간부터 나는 혼자였다.
도움은 없었고, 말은 닿지 않았다.
고통은 말이 없었지만, 그 침묵은 칼보다 날카로웠다.
누구에게 털어놓아도 전달되지 않았고,
외침은 메아리 없는 산골짝처럼
텅 빈 마음속으로만 흘러들었다.
그래서 나는 외로움 때문이 아니라
‘이해받지 못함’ 속에서 더 깊은 괴로움을 느꼈다.
하지만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모든 괴로움은 집착에서 비롯되고,
모든 집착은 ‘이 고통을 받아선 안 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나는 고통을 몰아내려 애썼다.
“왜 나는 이래야 하나?”
“왜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가?”
그 질문들 속에는 고통을 끌어안지 못하는 나의 거부가 있었다.
그 거부는 또 다른 괴로움을 만들고,
나는 그 안에서 끊임없이 헤매고 있었다.
불교에서 말하는 첫 번째 진리,
고제란 현실의 삶은 고통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
그 진실 앞에 마주 앉았을 때,
나는 비로소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 고통을 버텨낸 것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면,
그 또한 나의 수행이 아니겠는가?”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던 시간들.
젊음을 다 태워버린 불꽃 같은 날들.
허우적거리며 애써 살아낸 삶의 뒤안길.
그 안엔 어쩌면
나만의 안식처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누구도 들어올 수 없는,
나 홀로 앉아 고요히 숨을 고르던 시간.
사마타와 위빠사나.
고요히 머무르고, 깨어 바라보는 수행.
그 두 가지가 나의 삶 안에서
천천히, 조용히 자리를 잡아갔다.
마음을 멈추고,
고통을 억지로 바꾸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괴로움조차 거룩한 인연의 일부로 받아들이기.
지금은 안다.
그 누구도 나의 고통을 온전히 알 순 없지만,
그 누구도 나 대신 깨어 있을 수 없다는 것도.
그래서 나는 이제,
혼자인 것이 더 이상 외로움이 아니라
자각의 시작임을 온몸으로 느낀다.
한때는,
고통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보다
죽음이 더 큰 안식처가 아닐까 싶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삶 자체가 곧 수행이라는 것을.
고통과 함께 앉는 이 순간이,
나를 깨어 있게 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