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고요 속의 소리
고요한 마음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그것은 나를 부르는 신의 목소리인가,
아니면 나를 시험하는 악령의 숨결인가.
세상이 나를 버린 날이 있었다.
삶은 의미를 잃었고, 마음은 부서진 잔해처럼 고요 속에 가라앉았다.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그곳’을 보았다.
피와 연기로 가득한 들판.
그리고 그 한가운데서 나를 바라보던,
검게 뒤틀린 형체들.

2. 계룡산의 고찰
한겨울, 계룡산 자락의 묵은 고찰.
바람 한 줄기 스미지 않는 선방에서 홀로 좌선하던 나는,
짧은 숨을 길게 늘이며 고요 속으로 천천히 가라앉았다.
그때였다.
머리 위에서 뚝뚝 떨어지는 차가운 액체.
올려다본 천장 틈새에서 붉은 물방울이,
내 이마를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바람의 떨림과도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깨어라, 너는 아직 그 문 앞에 서 있다.”
순간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보았다.

3.형상의 등장
형상이 나타났다.
사람의 형체였으나, 얼굴은 울퉁불퉁한 바위처럼 거칠었고,
피비린내와 함께 검붉은 연기를 내뿜는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말했다.
“나는 네 안에 존재하는 고통이다.
네가 억눌러온 분노, 질투, 허욕, 공포의 조각들.”
나는 본능적으로 염주를 움켜쥐었다.
그러자 형상은 조롱하듯 웃었다.
“기도는 네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읊는
허공의 외침일 뿐이다.
너는 네 자신을 들여다본 적이 있느냐.”
그 말은 마치 식지 않은 칼날처럼 가슴에 박혔다.
수많은 참회와 수많은 기도 속에서조차,
나는 단 한 번도 내 안의 어둠을 바라본 적이 없었다.

4. 어둠속의 문
“그대가 찾는 깨달음은 어디 있는가?”
옛 스승이 내게 던졌던 물음이 떠올랐다.
그때는 몰랐다.
깨달음이란 찬란한 빛이 아니라,
깊은 어둠 속에서 스스로를 마주하는 순간에 피어나는 작은 불빛이라는 것을.
나는 문 앞에 서 있었다.
그 문은 열쇠가 필요하지 않았다.
다만, 문 너머의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만이 필요했다.
깨달음은 어둠을 몰아내는 것이 아니라,
그 어둠 속에서 나를 알아보는 일이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2025.07.14 - [소설/선우기담(禪遇記譚)(총5화)] - 제2화. 그림자와 마주한 밤|수행에서 깨달은 내면의 진실
제2화. 그림자와 마주한 밤|수행에서 깨달은 내면의 진실
프롤로그사람은 모두 빛을 찾는다.그러나 빛을 향해 걸어갈수록,그 발뒤에는 그림자가 길게 드리운다.나는 오래도록 그 그림자를 모른 척했다.밝음을 닮고자 애쓰며,어둠은 수행의 이름으로 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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