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방 수행이 멈춘 날
며칠째 선방에 들어가지 못했다.
탐욕과 분노를 마주한 뒤, 내 안에는 기도도, 말도, 심지어 침묵조차 남지 않았다.
나는 그저 텅 빈 채, 무너진 집처럼 마루에 앉아 있었다.
산등성이 너머, 잎을 모두 떨군 나무들이 겨울바람에도 흔들림 없이 조용히 서 있었다.
그 나무들이 어쩐지 나 자신처럼 느껴졌다. 버릴 것도, 지킬 것도 남지 않은 채, 그저 존재하고 있는 나.
도시에서 찾아온 친구
그런 어느 날, 도시에서 일하는 친구가 불쑥 절에 찾아왔다.
작은 종이컵에 담긴 커피 한 잔, 말간 웃음 뒤에 어딘가 흔들리는 그의 눈빛이 먼저 다가왔다.
“요즘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그는 낮게 말했다.
“아침에 눈 뜨는 게 제일 힘들어. 현실이니까… 출근해야 하니까. 학자금 대출도 갚아야 하고… 살아야 하니까.”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그의 손 위에 남은 핸드크림 향과 무표정하게 돌아가는 디지털 시계의 리듬을 조용히 느낄 뿐이었다.
친구의 악몽과 아수라 세계
밤이 되자, 친구는 손님방에 들어가 잠들었고 나는 대청마루에 앉아 달빛이 번지는 산등성이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밤은 고요하지 않았다.
친구 방 너머에서 들려오는 흐느낌, 억눌린 비명, 격한 몸부림.
나는 망설였지만, 결국 그의 이마에 손을 얹고 주문을 외웠다.
그리고 내 의식은 친구의 꿈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곳은 불타는 도시였다.
붉은 하늘, 검은 연기, 피처럼 번지는 절규.
사람들은 미움과 거짓, 분노 속에 서로를 찢고 있었다.
이곳은 아수라 세계.
질투와 반목, 이기심이 끝없이 반복되는 지옥 같은 공간.
그 한가운데에서 친구는 찢긴 정장을 입고 해명하며 도망쳤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신의 침묵이 전한 메시지
그때 하늘 저편에서 강렬한 빛이 터져 나왔다.
형체도, 얼굴도 없었지만, 그 존재는 ‘존재 그 자체’만으로 모든 소리를 잠재웠다.
그리고 나는 그 침묵 속에서 분명히 들었다.
“고통은 저주가 아니다.
고통은 버려야 할 감정이 아니다.
너는 지금, 너 자신을 속이며 살아온 죄를 마주하고 있을 뿐이다.”
친구는 무너져 울기 시작했다.
그 울음은 타인을 향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끌어안는 울음이었다.
그 순간, 불타던 도시는 잿더미로 꺼져가고 새벽빛 같은 푸른 기운이 번졌다.
고통을 껴안는 평온
나는 천천히 꿈에서 빠져나왔다.
그의 얼굴에는 땀 대신 평온이, 두 손에는 느슨한 쉼이 스며 있었다.
그날 새벽, 창밖에는 여전히 잎을 떨군 나무가 서 있었지만, 나는 알았다.
그것은 죽은 것이 아니라 고요한 준비 속에 있는 것뿐임을.
그 순간, 내 안에도 처음으로 ‘고통’을 있는 그대로 껴안을 수 있는 이상한 평온이 피어올랐다.
신은 멀리 있지 않았다.
고통과 공포 속에서도, 우리는 언제나 그 ‘침묵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제3화. 내면치유, 어둠 속에서 나를 지켜온 감정과 화해하는 법
많은 사람들이 ‘분노’나 ‘슬픔’을 부정적인 감정이라고 생각하며 억누릅니다. 하지만 때로는 그 감정이야말로 우리가 무너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내면의 수호자일 수 있습니다. 오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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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17 - [소설/선우기담(禪遇記譚)(총5화)] - 마지막 회 – 나를 껴안는 순간, 모든 것이 하나가 되었다
마지막 회 – 나를 껴안는 순간, 모든 것이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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