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허구(창작) 알림 |
| 본 글은 창작 소설입니다. 등장 인물·단체·장소·의식 및 사건 묘사는 서사적 장치이며 실제와의 유사성은 우연입니다. 또한, 본문 내용은 의학·법률·종교적 조언이 아닙니다. |
1. 서론 — 전날 통화, 그리고 다음 날 범실로
전날 저녁, 애기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수화기 너머로 잡음이 섞였고, 말끝마다 미세하게 숨이 가빴다. “요 며칠 자꾸 악몽을 꾸고요…
애가 자다 깨면 제 가슴이 훅 내려앉는 느낌이 들어요.” 그녀는 설명하려 애썼지만, 문장 중간중간이 멈췄다. 눈앞의 장면을 고르는 데 시간이 걸리는 사람의 호흡이었다.
나는 먼저 생활 신호를 안정시키는 몇 가지를 부탁했다. “오늘은 늦게까지 휴대폰 보지 마시고, 샤워하면서 3분만 온수를 등줄기에 그대로 두세요.
자기 전엔 창문을 한 뼘 열고, 불은 하나만 남겨 두고 주무세요. 새벽에 깨면 물을 한 모금만 드세요. 그리고—내일 바로 오십시오.
너무 급히 오지 마시고, 오시는 길에 마음을 ‘빨리’가 아니라 ‘차분히’로 맞춰 보세요.” 그녀는 여러 번 “네” 하고 받았다. 끊기 전 마지막으로 떨리는 숨을 길게 뱉는 소리가 들렸다.
다음 날, 그녀는 약속한 시간보다 10분 일찍 범실 문 앞에 섰다. 손에는 작은 생수병과 얇은 가디건 하나. 밤새 잠을 설쳤는지 눈 밑이 푸르스름했다.
나는 문을 열며 짧게 인사했다.
2. 법실의 준비 — 호흡·촛불·천서(기운의 형상)
문을 닫자 법실은 은근하고 편안한 신의 기운으로 가득했다. 창문 틈으로 들어오던 저녁 바람이 멎고, 애기 엄마와 함께한 불규칙한 기운이 은근하고 편안한 신의 기운가 부딪치면서 내는 소리가 귓속으로 전해졌다.
애기엄마는 두 손을 무릎 위에 포개고 앉아 있었다. 깜빡임이 느리고 길었다.
“숨만 따라가세요. 내 숨 말고, 본인 숨만.” 그녀의 어깨가 아주 작게, 그러나 규칙 없이 들썩였다. 불안이 몸에 들면 호흡보다 어깨가 먼저 반응한다.
나는 이미 기운을 받아 적은 천서를 펼쳤다. 천서는 글자가 아니다. 사람 눈에는 “글자처럼” 보일 뿐, 실제로는 기운이 뭉쳐 만든 형상이다.
가까이 두면 공기가 미세하게 물결친다. 손끝을 스치면, 미지근한 물에 손을 담갔다 뺀 느낌이 남는다. 이것이 천서다.
“시작합니다.” 촛불을 붙이며 방의 명암이 크게 두 칸 바뀌었다. 밝아진 것도, 어두워진 것도 아닌, 경계의 톤. 애기엄마 옆에 놓인 생수병마개를 열어 둔다.
입술이 마르면 말수가 늘고, 말수가 늘면 붙어 있던 감정이 터지기 쉽다. 오늘은 말을 아끼는 편이 좋다.
3. 태국 사원 승려의 기운 — 왜 따라왔는가
처음에 온 건 ‘태국 사원’의 냄새였다. 여름 비를 머금은 나무, 오래된 섬유에 밴 향 분말, 금빛 장식에서 반사되는 습기의 냄새. 그 냄새는 곧바로 기억의 문을 열었다.
그녀는 그곳에서 두 손 모아 합장했을 뿐이라고 했다. 그때 그녀의 등 뒤로 호기심 많은 기운 하나가 따라붙었다.
사원에서 삶을 마감한 승려의 기운. 누가 부른 것도 아니고, 강제로 데려온 것도 아니다. ‘저 사람 곁은 낯설지 않다’는 느낌 하나로 온다.
예전에 내가 적어준 부적 크기의 천서에서 흘러 나온 기운이 그를 끌어당겼을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그 기운에 의해 여기까지 오게 된 듯 보였다. 오늘 문턱의 공기가 의외로 가벼웠던 건, 그가 이미 돌아갈 마음을 정했기 때문이었다.
4. 핵심 과제 — 자살귀(목맨 혼)의 서러움과 설득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나는 애기 엄마 시야 안에 천서를 세로로 세웠다. ‘글자’들이 느리게 뒤집혔다. 애기엄마의 숨이 매끄럽게 이어질 때까지 허리를 굽히지 않았다.
불러내면 바로 튀어 오르는 종자가 있고, 시간을 끌어야 낮은 자리로 가라앉는 종자가 있다. 오늘의 핵심은 자살귀—목을 맨, 오래 매달린—이었다.
오래 매달린 영혼은 분노보다 ‘서러움’이 먼저 올라온다. 누구에게도 제때 발견되지 않았거나, 너무 늦게 발견됐거나. 그 감정은 ‘누군가는 화목하게 산다’는 장면을 보면 곧바로 미움으로 뒤집힌다.
애기엄마가 예쁘고, 아이를 품에 안고, 남편이 곁에 있는 그 일상… 그 평범함을 견디지 못해 그녀의 눈과 귀에 억지 그림을 심는다.
아이 울음이 유난히 날카롭게 들리고, 거울 속 자신이 미세하게 낯설어 보이고, 이유 없는 죄책감이 밤마다 목을 조른다. 겉으론 멀쩡해 보일 수도 있다. 멀쩡함이 오래가면, 더 깊이 파고든다.
5. 영안 보호 전략 — 내가 ‘보는 쪽’을 맡고 천서가 받치는 법
“여기까진 제가 합니다. 눈 감지 마시고, 반쯤 뜨고만 계세요.” 나는 손을 올려 천서의 가장자리를 짚었다. 방의 온도가 한 칸 내려가면서, 촛불 심지가 짧게 ‘툭’ 튄다. 들어왔다는 신호다.
동시에 애기엄마의 시야가 아주 잠깐 초점을 잃는다. 그때 바로 말리면 영안이 열려 버린다.
영안은 문고리가 아니다. 한 번 ‘쾅’ 열면 다시 잠그는 데 오래 걸린다. 그래서 내 어깨와 등으로 먼저 막는다. 내가 ‘보는 쪽’을 맡고, 그녀는 ‘느끼는 쪽’만 맡게 한다. 그 사이를 천서가 받친다.
6. 정화의 길 — 산신의 질서, 지장보살의 인도
“여긴 당신 자리 아니다.” 입으로 내뱉은 말은 나를 향한 것이고, 마음속으로 건넨 말은 그에게 향한다. 그는 처음엔 흉포보다 불신이 컸다.
‘너라고 다르냐’는 표정. 그래서 오래 걸린다. 협박이나 호통은 통하지 않는다. 자살귀에게 호통은 돌아갈 이유를 지워버린다. “결론은 같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시선을 천서에서 떼지 않은 채, 애기엄마에게 낮게 말했다. “아이 이름, 마음속으로만 한 번 부르세요.” 그녀의 목젖이 크게 한 번 움직였다.
그 움직임을 따라 방 공기가 낮게 웅—하고 울렸다. 그 진동을 타고 내가 준비해 둔 ‘정화의 길’이 열린다.
오늘은 오랜만에, 평소 쓰지 않던 방식을 꺼냈다. 나 혼자 힘으로 밀어내는 게 아니라, 위로 길을 열어 ‘돌아갈 이유’를 보여 주는 방식. 산신의 길과 지장보살의 길은 결이 다르다.
산신은 이 땅의 질서로 설득하고, 지장은 “멈춘 고통에도 길이 있다”는 걸 보여 준다. 오늘은 후자였다.
애기엄마의 오른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나는 그 손을 잡지 않았다. 대신 바닥에 손끝을 댔다. 내 손과 바닥 사이를 천서가 메우며 가느다란 통로를 만들었다.
그 순간 그는 이해했다. ‘여기가 끝이 아니구나.’ 이해 뒤엔 저항이 줄어든다. 미움이 풀린 건 아니다. 다만 미움을 들고 서 있을 필요가, 잠깐 사라진다.
7. 마무리와 생활 지침 — 밤 수면·생활 소음·따뜻한 국물
“됐어요. 지금은 그냥 숨만.” 그녀의 어깨가 아주 천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촛불 심지가 길어졌다.
나는 그제야 몸을 조금 돌려, 그를 보내는 예를 갖췄다. 돌아가는 건 이쪽에서 밀어붙이는 일이 아니다. 돌아갈 수 있게 자리를 정돈해 주는 일이다.
잠시, 정적. 천서에서 흘러 나온 기운에 의해 탁한기운을 정화했을 때의 툰탁하면서 신비한 소리가 들렸다. 방 온도가 원래대로 올라왔다.
나는 천서를 접지 않는다. 접히지 않기 때문이다. 천서는 다시 ‘기운’으로 퍼져 방 안에 섞인다. 형태가 사라지면, 일이 끝난 것이다.
“오늘 밤엔 창문을 한 뼘만 열고 주무세요. 너무 조용하면 마음이 소리에 매답니다. 아주 약한 생활 소음이 도움이 돼요. 내일 아침엔 뜨거운 국물 한 숟가락 먼저 드세요. 몸이 ‘살아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게 좋습니다.”
8. 마음의 후일담 — 분노의 절제와 “곁을 지키는 믿음”
“어지럼 없죠?” “네… 이상하게, 가슴이 가벼워요. 그런데 눈물이 자꾸 나요.” “괜찮아요. 몸이 무거울 때는 울음이 멀리 있어서 더 힘듭니다. 가까워졌다는 뜻이에요.
퇴마가 끝나자 아기 엄마는 환하게 웃었다. 그동안 있었던 일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몸이 눈에 띄게 가벼워 보였다. 그는 법실 문을 열며 “고맙습니다”라는 인사를 남기고 돌아갔다.
문이 닫히자
문이 닫히자, 법신은 다시 은근하고 편안한 신의 느낌으로 가득 찼다. 천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쪽으로 흩어졌다. 나는 어깨 힘을 늦게 뺐다. 늦게 푸는 건, 급히 풀면 남는 울림이 커지기 때문이다. 모든 내적 기운이 안정화 되고서야 그제야 배가 고픈 걸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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