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회 – 나를 껴안는 순간, 모든 것이 하나가 되었다

며칠째, 나는 선방에 들어가지 못했다.
기도도, 침묵도, 어떤 울림도 사라진 채, 그저 텅 빈 나만이 앉아 있었다.
탐욕, 분노, 공포, 비통함…
그 모든 감정과 마주한 뒤, 내 안엔 아무것도 남지 않은 듯했다.
창밖의 겨울 나무들은 잎을 모두 떨군 채,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서 있었다.
버릴 것도, 붙잡을 것도 없이 그저 존재하는 모습이 꼭 나 같았다.
타인의 고통 속에서 발견한 나
며칠을 함께 지낸 친구가 도시로 돌아가던 날, 그는 말했다.
“고맙다. 너 아니었으면… 난 나 자신을 평생 몰랐을 거야.”
나는 미소 지었지만, 그 말이 내게도 해당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와 함께한 시간 동안, 나는 친구를 통해 나 자신을 보고 있었다.
오래된 어둠과 마주하다
그날 밤, 촛불도 켜지 않은 어둠 속에 앉아 있자 오래된 기억이 스며들었다.
붉은 눈으로 나를 노려보던 존재.
어린 시절 다쳤던 왼쪽 눈.
그로 인한 놀림과 외면, 부모의 침묵, 세상을 향한 두려운 시선.
마침내 깨달았다.
그 어둠의 존재도, 꿈속의 신도 모두 내 안에 있었다.
분노도, 외로움도, 결국 나 자신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내 어둠을 ‘이겨내야 할 적’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그 어둠은 나를 무너지지 않게 해준 버팀목이었다.
고통 속에서도 삶을 놓지 않도록 버텨준, 또 다른 나였다.
나는 처음으로 그 어둠을 껴안았다.
심판하지 않고, 밀어내지 않고, 그저 속삭였다.
“그래, 고생했어.”
그 순간, 눈물이 흘렀다.
슬픔이 아니라, 용서였다.
나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진짜 용서였다.
공허는 생명의 씨앗이 된다
그 밤, 나는 기도 없이 앉아 있을 수 있었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내 안은 더 이상 공허하지 않았다.
그 공허는 이제 새로운 생명의 씨앗이 숨쉬는 공간이었다.
창밖의 겨울 나무가 달라 보였다.
죽은 것이 아니라, 고요한 준비 속에서 새 생명을 품고 있는 존재.
나 또한 그랬다.
모든 이가 품고 있는 ‘또 다른 나’
이제 나는 안다.
상처는 지워지는 것이 아니라, 안에 품는 것이다.
고통은 버릴 대상이 아니라, 이해해야 할 나의 일부다.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그림자 속에는
우리를 지켜온 ‘또 다른 나’가 살고 있다.
그 존재를 인정하고 품을 때, 비로소 우리는 통합된 온전한 존재가 된다.
삶으로 확장되는 깨달음
이 통찰은 명상방에서만 머무르지 않는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랑하는 관계 속에서, 우리는 수없이 자신의 어둠과 마주한다.
분노, 질투, 열등감, 외로움…
그 모든 감정은 나를 괴롭히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나를 지키고자 나타난 신호일지도 모른다.
만약 당신이 오늘도 버거운 감정과 싸우고 있다면, 잠시 멈춰 이렇게 말해보라.
“그래, 고생했어. 나를 지키느라 힘들었지.”
빛과 어둠이 하나가 되는 순간
신은 멀리 있지 않다.
신은 내가 외면해왔던 내 안의 진실이었다.
나는 나를 껴안았고, 그 순간, 모든 어둠과 빛이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진짜 내가, 거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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